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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의료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사상을 요구하는가? ? 의대교육에 대한 소고
분류 헤드라인
작성자 Webmaster
날짜 수정일 : 2021.12.15
조회수 116

AI시대 의료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사상을 요구하는가?

- 의대교육에 대한 소고


외과학교실 정철웅 교수

2002년, 한 외과수석전공의가 급성충수돌기염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전공의는 수술을 마친 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오늘은 환자가 날씬해서 2cm 밖에 안 열고 수술했네. 하하! 복강경구멍보다 작은 incision으로 open appendectomy을 할 수 있는데 구지 구멍을 3개나 뚫고 비싼 기계 써가며 복경경수술을 할 필요있어?” 필자의 전공의 시절 이야기다.


불과 20년전 한 외과치프의 이 호기로운 허세는 오늘날 open appendectomy를 한번도 해 본적 없는, 심지어 본적도 없는 전공의와 학생들 앞에서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발언으로 치부되는 먼 옛날 얘기요, 술자리의 안주거리 추억이 되어버렸다.


올해 대학에 들어온 의대 21학번 새내기들은 2002년생이다. 이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거쳐 제 앞가림하는 의사로써 성장하려면 앞으로 15~20년은 걸릴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의료환경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 변화를 준비해 나가야 될 것인가?


로봇기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4차 산업혁명을 대변하는 이러한 단어들은 20년후에는 그저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의료정보학 교수로 있는 Enrico Coiera 교수는 2018년 LANCET지에 실은 기고문 ‘The fate of medicine in the time of AI’에서 앞으로 도래할 AI시대의 의학분야의 변화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확실한 발걸음은 바로 임상교육을 디지털 세계에 적응시키는 것(The most obvious step is to adapt clinical education to the digital world)’이라고 답한다. AI를 의학적 결정을 위한 파트너로 받아들이되 AI의 결정을 맹신(automation bias 유발)이 아닌 비판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AI가 의사를 대체하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단지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만이 환자에 필요한 것이 아니고 질병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개인적이며 모호한 선택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런 불확실성에 의사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의사는 치료의 기술적 알고리즘보다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치료의 모델을 개발하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넷플릭스 영화 중에 <나의 마더(원제: I Am Mother)>라는 영화가 있다. 세상을 지배하게 된 AI로봇이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길러 내기 위해 폐쇄된 공간에서 한 인간을 양육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영화 장면 중 ‘윤리학교육’ 장면이 있다. ‘응급실에 아주 위독한 환자가 들어왔다. 이 환자는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의사가 치료를 늦춘다면 환자는 죽겠지만 그의 장기로 다른 환자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다. 이 환자가 아니면 다섯 명의 환자는 죽게 된다. 의사가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방침은 뭘까?’라는 질문을 AI엄마가 10대 인간 딸에게 던진다. 아마도 AI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의 주장을 공부시키며 한 명의 희생을 통해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답을 몰아가는 듯 하지만 주인공은 답하기를 머뭇거리며 대답을 재촉하는 AI엄마에게 되묻는다.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정직한지, 게으른 사람인지, 성실한 사람인지…’ 등등. 인간의 가치판단은 이처럼 단순히 이론이나 사상에만 근거하지 않고 다양한 판단의 기준이 들어가게 되고 그 기준은 일관되지 않으며 사람마다, 또 상황에 따라 지극히 상이하게 적용되곤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예상되는 AI와의 공존에서 AI와 인간의 이러한 간극을 최대한 줄이면서 의사의 궁극의 존재목적인 환자를 전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의료의 많은 부분에서 확률이 나온다. 이약의 치료효과는 몇 퍼센트이고 이병의 생존율은 몇 퍼센트이고 이런저런 합병증이 생길 확률은 얼마이고 등등, 하지만 의사는 단지 확률을 가지고 환자의 치료를 결정하지 않고 환자 또한 확률에 의지해서 자신이 치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5년 생존율이 30%라고 해도 환자는 그 30%가 자신에게는 100%의 확률로 오기를 바라며 그들의 아픈 육신을 의사에게 의지하며 때로는 30%의 확률에 낙담하여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최선의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기도 한다. 이러한 의료의 복잡다양성과 불확실성에서 환자 개개인의 상황과 상태에 맞춘 적절한 치료시기와 방향의 결정은 인간의사가 담당해야 되지 않을까.


올해 6월, 한국의학교육학회에서 성균관의대 최연호 학장이 ‘COVID-19 이후의 의학교육을 위해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본교 의학교육세미나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강의를 하여 아마 들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최연호 학장은 성균관의대 학장을 맡아 '인성중심의 절대평가제'라는 획기적인 평가기준을 도입하여 지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강연에서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 나오는 패러다임의 개념과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과학혁명을 통한 패러다임은 변화는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의 이론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가 의학교육에서 지향하여야 되는 인재상에 대해 역설하였는데 의학교육을 통해 양성해 나가야 되는 의사상은 어떤 한 패러다임에 치우친 의사가 아니라 인간의 통찰을 이용하여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잘 조합하여 최대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의사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패러다임인 AI의 객관적이고 결과 지향적이며 팩트 지향적인 것을 넘어서 메타인지 능력을 통한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아우르는, 사람과 상호작용하여 협력하며 공감하고 도덕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4년 전임교수 발령을 받고 의과대학에서 학생교육과 관련하여 처음 발을 들인 일이 편성범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의대 학생계발센터 (현 ‘학생행복센터’)’ 설립 TFT 활동이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학생상담시스템을 구축하고 본과 1학년때는 전수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의대 생활 전반을 점검하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더 심도 있는 상담을 통해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시행하였다. 그 시행 첫해, 15명 정도의 학생을 맡아 전수상담을 하던 중 한 학생에게서 정말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쩌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진학의 상담하는 많은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의 보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정당화해 보려 하였지만 그리 쉽게 타협하기 힘든 대화였다. 대입 면접 때나 자소서에서 쓰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 ‘어떻게 의대에 지원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한 학생의 답을 기억에 의지해 옮기자면 이러하다. “저는 실은 공학도가 꿈이고 공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근데 수능 점수가 너무 잘 나온 거예요. 진학지도 선생님께서는 ‘너 이정도 성적이면 서울에 있는 의대도 가능한 점수인데 의대에 진학하지 그러니.’ 하시고 집에 와서 부모님과 상의해도 남들은 가고 싶어도 성적이 안돼서 못 가는 의대를 아들이 지원할 수 있다고 하니 말리지 않으셨다” 고 했다.


수 년 전부터 외과임상실습을 나오는 본과 3학년 학생들에게, 그리고 2년 전부터 책임교수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본4 교과과정을 통해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지, 의사다움이 무엇인지, 의사로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한 학생의 고백이 준 충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습학생들에게 종종 한 환자의 에피소드를 얘기해준다. 5년 전 신장이식을 받은 한 할머니는 얼마 전 모야모야병으로 사랑하는 딸을 갑자기 잃고 3명의 손주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 어느 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통해 할머니가 팔이 부러져서 정형외과로 입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병실을 찾았고 나를 보자 마자 할머니는 펑펑 울기 시작하였다. 그 울음의 이유를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골절로 인한 통증이나 병원비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3명의 손주를 돌볼 사람이 없어 자신을 찾고 있는 손주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 할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는 무엇일까? 물론 골절을 후유증없이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손주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일 것이다.


고려대 의과대학은 현재의 예과2 년, 본과 4년으로 나눠져 있는 교육과정을 6년제로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연세의대가 이미 도입한 절대평가제도와 성균관의대의 인성기반의 절대평가제도 등의 절대평가의 단계적 도입을 통해 더 이상 의학적 지식만으로 상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고 학생선발에서부터 우리 의과대학 사명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창의적 융합적 인재 양성을 위한 최적화된 교육과정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새교육과정개발 TF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대되는 프로그램은, 도입가능 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다중전공프로그램(Enrichment Program)를 두어서 학생들이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1년동안 자유롭게 본인을 개발하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학생 스스로 본인의 꿈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다양한 선택을 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의대기간 중에 생긴다면 더 넓은 시야와 안목을 우리 후배들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는 ‘좋은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지만 위대한 의사는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합니다.’ (The good physician treats the disease; the great physician treats the patient who has the disease.)라는 명언을 남겼다. 100여년 전, 2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선배의사의 이 한마디가 제4차 산업혁명을 지나 AI시대를 살아갈 후학들에게 AI 의사와는 차별화된, 진정으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의사의 상을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